절기자료

  • 홈 >
  • 자료실 >
  • 절기자료
절기자료
초막절 운영자 2023-01-25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14

http://cclick.co.kr/bbs/bbsView/46/6201361

출처 :: http://www.21cifm.org/

 

초막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절기입니다 (I)

 

   지금까지 우리는 일반적으로 추수 감사절을 가을철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교회절기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날은 추수를 상징하는 갖가지 과일들로 교회의 강단을 장식하고, 또 추수에 감사해서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절기를 보냈다. 그러나 우리가 추수감사절의 뿌리를 구약성경에서 찾으면 이 절기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절기를 두 가지 이름으로 불렀다.

 

   첫째는 출애굽기 23:16절에서 수장절로 불렀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늦은 추수를 했다(9-10월). 그리고 추수를 기념하기 위해서 수장절을 지켰다.

 

   둘째는 레위기 23:34절에서 초막절로 불렀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늦은 추수를 기념하기 위해서 수장절을 지켰다. 그리고 수장절 기간에 초막을 만들고 7일 동안 초막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이 절기를 초막절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구약성경에서 “수장절”과 “초막절” 두 가지 이름으로 불려 졌다. 이 가운데 수장절은 오늘날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표면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초막절은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개념이다. 하나님은 가르쳤지만 교회가 잊어버린 개념이다. 이 개념이야말로 교회와 크리스천이 잊을 수 없으며, 자신의 신앙성장을 위해서 항상 기억해야만 하는 개념이다. 

 

   그 가운데 초막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연계시켰다. 그리고 절기동안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초막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생활하도록 명령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초막절과 연계시킨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이 무엇인가? 첫째 출애굽 사건이다. 그리고 둘째는 광야생활이다. 레위기 23:42, 43절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이 성경구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조상들의 출애굽 사건과 광야생활을 대대로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다(43절). 이 교육을 위해서 하나님은 초막을 체험을 위한 모형으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초막모형까지 만들어 체험까지 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핵심 내용이 무엇인가?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교육시키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그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담겨있는 교훈을 생각하고 배우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초막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사건과 광야생활을 기억하도록 하신 이유는 그 사건의 내용을 기억하고, 사건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며, 그 사건 속에서 행하신 일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건을 배우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게 하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 지금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해 주시며, 필요를 공급해주신 하님께 감사드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출애굽 사건과 광야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1. 구원하시는 하나님

 

   두 가지 측면에서 출애굽 사건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사건이다. 하나님은 항상,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강조하고 확인시키셨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신5:6).” 둘째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 사건은 죄와 어둠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대한 모형이다. 사단의 압제로부터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구원사건의 모형이다. 이 사건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구속의 원리가 그대로 나타나있는 사건이다.

 

   그러면, 구원에 대한 첫 번째 원리가 무엇인가?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노력의 대가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어은 자 되었느니라(롬3:23).”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사건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투쟁이나 반란을 통해서 쟁취한 결과가 아니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해낸 사건이다. 출애굽 사건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원사건으로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성경적 증거가 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출애굽 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예수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의 세례(침례)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10: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을 만들게 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도록 하며,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로 만드신 것은 지난 역사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낸 분이 하나님 여호와라는 사실을 배우고, 잊지 말며, 기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즉 과거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서 왔는가? 출애굽 사건과 동일하게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성취된 사건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죄의 종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구원사건은 우리가 노력하고 싸워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 우리의 행위로 얻은 구원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이 절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기 원하는 사실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이 절기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께 감사하는 것이 이 절기를 성격적으로 지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복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이 절기를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하는 방법이다. 구원받은 복된 소식을 선포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고 전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2. 인도, 보호, 공급,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한 이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을 치고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기억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장막대신 초막을 짓도록 명령하셨다(43절).

 

  그렇다면 초막을 통해서 광야생활의 어떠한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인가? 조상들의 광야생활 그 자체 인가? 아니면 조상들과 광야에서 함께했던 하나님인가?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기념할 만한 것들이 없다. 그들이 광야에서 행한 것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돌아보며 기억하고 기념할 것은 조상들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보호하시며, 공급하시고,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광야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첫째, 광야는 크고 두려운 곳이다 (신 1:19). 둘째, 광야는 거칠고 메마르며 물이 부족한 곳이다(출 17:1, 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백성들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셋째, 광야는 대적들이 있는 곳이다(출 17:14, 16). 넷째, 광야는 기후변화가 극심한 곳이다(출 13:21, 22). 광야의 낮은 햇볕이 너무나 강한 곳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너무나 추운 곳이 광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고 보호하셔야만 했다. 다섯째,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다(출 16:13).광야는 토질과 기후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먹이셨다.

 

   이처럼 광야는 열악한 곳이다. 광야생활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함께하심과 공급하심을 의미하고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을 만들고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것은 조상들과 함께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배우라는 것이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라.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우리가 산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그리고 때를 따라 공급하시며, 함께하셨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지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 분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영원한 약속을 주신 하나님

 

   초막은 일시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되면 모든 가정에서 초막을 만들고 7일 동안은 그 안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은 초막 만드는 법을 미쉬나(Mishna)에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규정에서 가장 핵심적 사항은 “초막이 영원히 거하는 처소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거하는 처소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견고하게 짖지 못하도록 했고, 지붕은 하늘이 보이도록 완전히 덮지 못하게 규정했다.

   

이와 같은 초막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사용했다. 그들은 40년을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한 번도 돌을 사용하여 견고한 집을 짓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언제든지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출40:36-38). 둘째,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은 약속의 땅,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나가는 여정일 뿐이었다. 광야는 소망을 두고, 뿌리를 내리고,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었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디와 같은 곳인가? 신앙인들에게 이 세상은 광야와 같은 곳이다. 즉 신앙인들에게 이 세상은 초막에 거하는 삶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은 약속의 땅, 가나안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나가는 짧은 여정일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초막에 거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은 초막에 거하듯 잠시 지나가는 삶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늘나리에 대한 소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초막을 통해서 우리에게 배우고 가르치려 했던 것이 바로 이 사실인 것이다.

 

   초막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교훈을 주려고 했던 사실이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가지 사실이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의 구약 성경적 기원을 초막절에 둔다면 오늘날 추수감사절은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와 지금까지 인도하고, 보호하며, 공급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천국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