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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일천번제 운영자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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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click.co.kr/bbs/bbsView/39/6113912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mc392791&logNo=221224123474

 

<솔로몬의 일천번제>


우리는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말씀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이 일천 번 제사를 드렸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하루에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뜻일까요?

다시 말해서
한 번에 일천 마리의 양을 희생제물로 드렸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3개여 년에 걸쳐서 일천여 날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를 드렸다는 뜻일까요?

그 일천 번제란 일천 번 제를 드렸다는 뜻이 아니라 양 일천 마리를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燔祭)로 드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일천 일에 드린 번제가 아닙니다.

일천 일이면 약 3년인데 솔로몬이 기브온이란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그 후에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천 번제는 1천 마리의 짐승을 번제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3장 4절에는 솔로몬이 1천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 언급되어 있고

열왕기상 3장 5절 현대인의 성경에는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꿈에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3:4-5절(개역한글)을 보십시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열왕기상 3:4-5절(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당시에 가장 유명한 산당은 기브온에 있었으므로 솔로몬 왕은 기브온으로 가서 1,000마리의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렸다. 그 날 밤 여호와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었으면 좋겠는지 말해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열왕기상 3:4-5절(새 번역)을 보십시오.

“기브온에 제일 유명한 산당이 있었으므로, 왕은 늘 그 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이 그 때까지 그 제단에 바친 번제물은, 천 마리가 넘을 것이다. 한 번은, 왕이 그리로 제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 날 밤에 기브온에서, 주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 하셨다.”

이것을 보면 솔로몬이 하루에 1천 마리의 짐승을 번제로 드린 것으로 추론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에서 일천번제라는 이름의 헌금과 새벽예배를 드리는 경우를 봅니다.

그 성경적인 근거를 '솔로몬의 일천번제'로 예를 드는데, 그러한 용어는 흔히 일천 번의 제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일천번제 자체를 비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일천 번을 새벽예배와 헌금을 드리는 그 신앙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천번제는 일천 번의 번제가 아니라 한꺼번에 드리는 일천 마리의 번제를 말한다는 것을 바르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일천번제는 백일기도라는 토속적인 신앙형태에서 발전하여, 천일기도(3년)라는 용어를 나름대로 성경에서 찾은 것이지만, 성경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천 번의 제사가 아니고, 한꺼번에 일천 마리를 번제로 드린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역대하 1:6)

새 번역에는
“솔로몬은 거기 주님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제단으로 올라가, 번제물 천 마리를 바쳤다.”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솔로몬은 거기 만남의 장막에 있는 놋제단으로 올라가 야훼 앞에 번제물 천 마리를 살라 바쳤다.”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혹간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일천 마리를 동시에 번제를 드릴 수 있는가하고 반문하면서, 그것은 일천일(日)의 제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일천일의 제사인가 아니면 일천 마리의 번제인가를 분명히 알려주는 성경구절이 있으며, 일천 마리의 제물이 맞습니다.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일천이요 수양이 일천이요 어린 양이 일천이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대상29:21)

수송아지, 숫양, 어린 양까지 합쳐서 모두 삼천 마리의 번제를 말하고 있으며 일천은 에레프, 번제는 오라라는 히브리어가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더욱이 성경에는 소가 이만 이천, 양이 십 이만인 경우도 있습니다.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왕상8:63)

만일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가 일천일의 새벽제단이라고 해석된다면, 이만 이천의 소와 십이만의 양은 십사만 이천일(日)의 새벽제단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만이천일은 약 60년이 되어 지며, 십사만 이천 일은 389년이 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8:63절 이후의 구절을 더 읽어보십시오.

과연 그 많은 번제물을 번제 드리는데 며칠이 걸렸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그 때에 솔로몬이 칠일 칠일 합 십 사일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왕상8:64-65)

이만이천의 소와 십이만의 양을 14일 동안 번제로 모두 드렸습니다.

또 솔로몬은 1000일 동안 계속하여 번제를 드린 적이 결코 없습니다.

솔로몬은 해마다 세 번씩 번제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위에 해마다 세번씩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전 역사가 마치니라”(왕상9:25)

일천번제에 대해서 잘못된 점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에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대부분의 일천번제는 일천 번의 제단을 말하며, 다시 말하여 일천 번의 헌금이나 일천 번의 새벽예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일천 번제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 무속적인 신앙의 형태인 백일기도와 같이 기복적인 소원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기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또한 제사는 이미 변역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려진 희생제로 이미 구약적인 제사는 변역되어진 것이며, 이처럼 제사를 계속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번제란 의미는 제물을 태움으로 인하여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인간의 죄 값을 그 제물이 보상한다는 개념입니다.

희생제물을 태운다는 것이 곧 당사자의 죄를 없앤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물로 단번에 드려진 것이기에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같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횟수를 많이 드리는 번제가 필요할까요? 

아직도 많은 희생짐승이 필요할까요?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7:27)

히브리서 10:8을 보십시오.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하나님은 더 이상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오역하면서까지 1000일 동안을 일천 번제를 드리자는 말인가요?

과연 돈을 일천일 동안 바쳐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우린 이미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변질시키면서까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야만 합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더 이상 엉뚱한 짓 하지 말고 한국교회여! 더 늦기 전에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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